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PLAVE)는 이제 온라인에서만 인기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지난해 앨범 두 장을 연달아 100만장 넘게 팔았고, 고척스카이돔 공연까지 매진시켰다. 플레이브를 만든 블래스트의 연 매출도 855억을 넘어섰다. 블래스트의 2025년 매출은 855.1억으로 전년 453.9억보다 88.4%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99.4억에서 202억으로 두 배 넘게 늘었고, 당기순이익도 100.7억에서 193.7억으로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은 21.9%에서 23.6%로 높아졌다. 매출 규모는 국내 중견 엔터테인먼트사와 비교할 만하다. 지난해 블래스트의 매출은 큐브엔터테인먼트 872억과 비슷했고, 웨이크원 810억과 쏘스뮤직 778억보다 많았다. 국내 엔터테인먼트사 30곳 가운데 매출 기준 12위에 해당한다.
지난해 밀리언셀러 앨범만 두 장
2023년 3월 데뷔한 플레이브는 예준·노아·밤비·은호·하민으로 구성된 5인조 버추얼 보이그룹이다. 화면에는 웹툰풍의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AI가 노래하고 대화하는 방식은 아니다. 실제 멤버가 노래와 춤, 대화를 맡고 모션캡처와 실시간 그래픽 기술을 이용해 이를 캐릭터의 움직임과 표정으로 바꾼다. 사전에 만든 영상을 재생하는 방식도 아니다. 멤버가 라이브 방송 중 팬의 댓글을 읽고 즉석에서 대답하거나 노래와 춤을 선보일 수 있다. 블래스트는 모션캡처 데이터를 언리얼 엔진과 연결하고 캐릭터의 신체 충돌과 발 위치 등을 실시간으로 보정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플레이브의 인기는 음반 판매량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2025년 2월 발매한 미니 3집 ‘Caligo Pt.1’은 초동 판매량 103만8,308장을 기록했다. 데뷔 앨범의 초동 판매량은 약 2만7,000장이었다. 2년이 채 되지 않아 첫 주 판매량이 약 38배로 증가했다. 같은 해 11월 내놓은 싱글 2집 ‘PLBBUU’도 초동 109만장을 넘겼다. 지난해에만 두 장의 밀리언셀러 앨범이 나온 것이다.
공연장도 커졌다. 지난해 8월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사흘간 공연한 뒤 11월에는 고척스카이돔에서 이틀간 앙코르 공연을 열었다. 두 공연 모두 매진됐다. 오는 9월 12~13일에는 인천문학경기장 주경기장에서 첫 월드투어를 시작한다. 버추얼 아이돌의 첫 단독 스타디움 공연이다.
7.5억 매출에서 3년 만에 855억으로
블래스트는 2022년 1월 MBC 사내벤처에서 독립해 설립됐다. 이성구 대표와 윤창희 부대표는 MBC에서 VR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와 게임엔진을 활용한 예능 ‘두니아’ 등의 제작에 참여했다. 창업 당시 블래스트는 버추얼 캐릭터와 실시간 방송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에 가까웠다.
설립 첫해인 2022년 매출은 7.5억에 불과했다.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은 각각 11.9억이었다. 감사보고서 기준 2023년 매출은 114.2억으로 늘었고 18.6억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로 돌아섰다. 2024년에는 매출 453.9억·영업이익 99.4억, 지난해에는 매출 855.1억·영업이익 202억을 기록했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3년 동안 매출이 약 113배로 증가했다. 다른 회사에 기술을 공급하는 대신 그 기술로 직접 아이돌을 만들고, 플레이브라는 IP를 블래스트가 보유한 결과다.
지난해 재화매출은 567.9억으로 전체 매출의 66.4%를 차지했다. 용역매출은 287.2억이었다. 세부 품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앨범과 공식 상품 판매가 재화매출 증가에 상당 부분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재고자산도 17.8억에서 37.2억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비용도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맞춰 바뀌었다. 지난해 외주용역비는 231.6억, 재화제작비는 197억, 판매수수료는 79.8억이었다. 세 항목을 합하면 전체 영업비용의 77.9%다.
재화제작비는 재화매출의 34.7%, 외주용역비는 용역매출의 80.6%에 해당한다. 다만 외주용역비에 앨범과 공연 제작 관련 비용이 함께 들어 있을 수 있어 이를 각 부문의 원가율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직원 수도 늘었다. 고용정보상 2023년 하반기 40명 안팎이던 근로자는 2026년 들어 100명을 넘어섰고 최근에는 약 105명으로 집계된다. 기술 개발자 중심의 조직에 아티스트 기획과 음반·상품 제작, 공연 운영 인력이 더해진 것으로 보인다.
800억에 투자받던 회사, 8,000억 몸값 제시
투자 과정에서도 블래스트의 변화가 나타난다. 2022년 MBC와 IPX에서 24억을 투자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추정 기업가치는 146억이었다. 이어서 DSC인베스트먼트와 슈미트로 부터 20억의 투자를 유치하며 추정기업가치는 200억을 넘어섰다.
플레이브가 흥행한 뒤인 2024년 3월에는 40억의 유상증자가 이뤄졌다. 하이브가 30억을 투자했고, 당시 공개된 투자자와 발행 주식 수를 대조하면 나머지 10억은 YG PLUS가 투자한 것으로 계산된다. 당시 투자 후 기업가치는 약 800억으로 평가됐다.
블래스트는 현재 다시 투자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투자업계에서는 신주에 약 8,000억, 기존 주주가 매각하는 구주에 약 6,000억의 기업가치가 제시된 것으로 전해진다. 2024년 하이브 투자 당시보다 신주 기준 몸값이 10배로 높아진 셈이다. 다만 아직 거래 구조와 투자금액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투자자가 실제로 해당 가격을 받아들여 거래가 끝나야 블래스트의 새로운 기업가치가 확정된다.
하이브와 거래 늘고 일본·베트남 법인도 운영
하이브는 단순한 재무적 투자자와는 다른 관계다. 블래스트는 지난해 하이브 및 그 종속기업을 상대로 38.9억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 1.1억보다 크게 늘어난 금액이며 전체 매출의 4.6%에 해당한다. MBC와 IPX, 하이브는 보유 지분이 각각 20% 미만이지만 이사선임권을 갖고 있다. 블래스트도 이들을 회사에 유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으로 분류했다.
해외 진출 역시 준비 단계만은 아니다. 블래스트는 일본과 베트남에 지분 100% 자회사를 두고 있다. 지난해 일본 법인에 2.9억, 베트남 법인에 5.8억을 추가 출자했다. 베트남 법인으로부터 매입한 금액도 11.6억이다. 중소기업 회계처리 특례에 따라 연결재무제표나 지분법을 적용하지 않아 본문 실적에는 해외 법인의 재무상태가 별도로 나타나지 않는다.
지난해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227.2억이었다. 다만 이 가운데 매입채무와 미지급금 증가에 따른 현금 유입 효과가 64.2억 포함돼 있다. 이들 비용을 실제 지급하는 시점에는 현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
블래스트의 2025년 실적은 버추얼 아이돌이 연 매출 800억과 영업이익 200억을 만들 수 있는 사업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실시간 그래픽 기술을 개발하던 회사가 음반과 상품을 만들고 대형 공연을 여는 엔터테인먼트사로 바뀐 과정도 숫자로 드러났다.
이제 관심은 새로 받으려는 투자금을 어디에 쓸지에 모인다. 플레이브 한 팀에 집중된 매출을 해외에서 더 키울 것인지, 두 번째 아티스트를 내놓을 것인지가 관건이다. 우선주 상환과 스톡옵션 행사에 필요한 자금도 고려해야 한다. 8,000억이라는 기업가치는 투자 유치가 끝난 뒤에야 시장의 평가를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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